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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책임지는 사람만 부자가 된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은 그에게 권한을 넘기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듯 모든 책임은 항상 나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재산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 책임은 국가에,주변 여건에, 배우자에, 교육에, 건강에, 그리고 경제적인 상황에 있지 않고,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이 대목에서 당신은 이렇게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아니 그럼, 원치 않는 질병,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재앙은 무엇이란 말인가? 또 내가 사기를 당해도, 내 잘못이 없는 사고를 당해도 다 내 책임이란 말인가? 그럴 때도 책임은 항상 나한테 있다는 말인가?"

 

그럼 이 경우는 어떠한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얌전하게 잘 주차해 놓은 차를 누가 와서 왕창 긁었다고 하자. 이것도 당신 책임인가? 다른 사람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책임이 당신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그에 따른 대응에 대해선 책임이 있다.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냐, 멀쩡한 차를 이렇게 해 놓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길길이 뛰며 화를 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조금 찌그러졌던 부분인데 이제 보험 처리하면 되겠다'는 계산을 순식간에 하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오히려 돈을 버는 수도 있다.그러므로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이 당신에게 있는것은 아니지만,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대해선 항상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를 육체적,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고, 우리에게 근심을 가져다주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어떤 식으로 닥치든, 결국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내보일 수밖에 없다.

자, 여기 오렌지가 하나 있다. 이 오렌지를 부드럽게 누르면 안에서 뭐가 나올까? 물론 '오렌지 즙'이다. 뭐 그런 싱거운 질문이 다 있냐고? 그러면, 그 오렌지를 짓밟으면 뭐가 나올까? 오렌지 즙이다. 만약 그 오렌지를 벽에 던지면 뭐가 나오냐? 역시 오렌지 즙이다. 

 

이때 오렌지는 자기에게 가해진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선 책임이 없다. 하지만 스스로 무엇을 내놓았느냐에 대해선 책임이 있다. 오렌지는 항상 자신이 안에 갖고 있는 것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안에서 생겨 나온 것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 즉 우리의 자세와 우리가 내보인 반응에 대한 책임 말이다.

책임은 '잘 응답할 수 있다'는 뜻으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응했느냐에 대한 책임은 항상 우리에게 있다. 

 

물론,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대응을 완전히 통제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모든 책임을 혼자 뒤집어쓸 수는 없다'는 변명을 할 수도 있다. 특히 스스로 선택한 대응이 좋지 않은 것이었을 땐 이런 변명의 유혹이 더 강해진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싸우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분명 멱살잡고 싸우는 것 말고도 다른 대응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독사한테 물렸을 때, 그 독사를 잡아죽인다고 쫓아가는 것은 오히려 독을 더 빨리 퍼지게 할 뿐이다. 그럴 땐 지체하지 말고 독을 뽑아내는 게 상책이다. 얼굴 붉히고 싸울 힘이 있으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는 게 상수이다. 예컨대, 지금 상대방의 태도가 내가 전에 했던 좋지 않은 태도에 대한 반작용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의 대응이란 곧 어떤 사건에 대한 대답이다. 그리고 그 대답에 대해서 우리는 책임이 있다.책임은 영어로 'responsibility'이다. 이 단어에는 '대답(response)'과 '노련한 능력(ability)'이란 의미가 들어있다. 이렇게 보면 책임이란 영어로 '노련하게 대답하는 능력'이 된다. 결코 '주먹엔 주먹으로, 도발엔 전쟁으로' 대응하는 것만이 분명 능사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임을 미룬다. 사람들이 그건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할 때, 흔히 들먹이는 말은 대략 다음 세 가지이다.

 

"태어나길 원래 그렇게 태어난 걸......".

"나도 좋은 부모 만났으면......".

"너도 내 상황이 되면......". 

위의 이유들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예를들어 보면 한 청년이 두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 있었다고 하자. 기자들이 그 청년에게 살아온 과정과 범행 동기를 물었다.

그 청년은 자신이 도저히 구제불능인 문제가정에서 자랐다고 했다.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이라곤, 항상 술에 취해 어머니를 두드려 패는 아버지의 모습밖에 없었다. 식구들은 아버지가 훔쳐온 물건들로 연명했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청년이 여섯 살 때 도둑질을 시작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살인미수로 복역한 전과가 있는 그는 이제 두 사람을 진짜로 죽인 살인자가 되었다. 청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런 말로 맺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안 기자들이 그를 찾아갔고, 놀랍게도 그는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유능한 변호사가 된 그는 주변의 신망도 높고, 지역사회와 교회에서도 큰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누가 보아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기자들은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성공을 일구어낼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에 그는 살인한 청년과 조금도 틀리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를 맺었다. 

 

"그런 것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렇게 오래 몸소 체험한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똑같은 유전인자, 똑같은 부모, 똑같은 가정교육, 똑같은 환경에 있었지만, 그 해석은 달랐고, 그 대응 또한 정반대였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어떻게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었을까? 아마도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한 번쯤은 만났을 것이라고 본다. 한 사람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또한 두 사람한테 책 한 권쯤 손에 들고 읽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은 끝가지 읽었고,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진짜로 그랬는지 지금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의 인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싫다고 버둥거려도 우리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만약 오늘 모든 사람들의 전 재산을 몰수하고, 각자에게 3백만원씩 공평하게 나눠준다고 가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벌써 저녁 무렵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일부사람들 주머니에서 빠져 나온 2백만원 정도가 다른 사람들 주머니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몇 주만 지나면, 다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생겨날 것이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돈의 분포가 이전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가는 데는 1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